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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에 걸쳐 이어온 한국 골프 이대로 무너지나

고형승 기자2022.12.26 오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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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1세대 골퍼 박세리, 최경주

한국 골프 발전은 박세리, 김미현, 최경주, 양용은과 같은 해외 진출 1세대 선수들(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시점부터 세대를 부여할 때)이 활약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골프 변방에서 온 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우리 국민은 TV를 시청하며 그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고 우승하는 장면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

해외 진출 1세대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세대를 ‘세리 키즈’라 불렀다. 여자는 1988년부터 1990년 사이에 태어난 선수들을 일컫는 용어인데 신지애, 박인비, 이보미, 김하늘, 최나연, 유소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남자는 대략 1986년부터 1988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로 김경태, 배상문, 강성훈 등이 있다. 이들은 해외 진출 2세대이자 황금 세대라 부른다.

이후 세리 키즈를 롤 모델로 보고 자라난 세대가 있었다. 남녀 공히 1995년 전후에 태어난 선수들이 해외 진출 3세대 그룹에 속한다. 신지애와 박인비 그리고 김경태, 배상문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낼 때 주니어 선수 시절을 보낸 이들이 있다. 여자 선수는 고진영, 김효주, 백규정, 김아림 등이며 남자는 김시우, 김성현 등이다.

올해 국내 4세대 여자 아이돌 그룹이 대거 등장한 것처럼 국내 골프계에도 해외 진출 4세대 선수들이 나타났다.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 또는 월드컵 세대가 그들이다. 여자 선수로는 2023년 LPGA 퀄라파잉스쿨에서 1위에 오른 유해란을 비롯해 9위의 박금강 등이 있으며 남자 선수는 김주형이 2002년생이다.

지금까지 한국 골프는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한 주니어 골퍼에게 ‘나도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구조가 유지됐다. 그리고 그것은 꽤 성공적인 선순환 구조로 발전하며 마치 한국 골프의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이런 구조 안에서 이어온 한국 골프 DNA는 그 어떤 나라의 그것보다 강력했고 모두가 부러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구조가 점차 와해되고 헐거워지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굵직한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우승은 커녕 3위권 혹은 5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일본이나 미국에서 들려오는 우승 소식도 그 수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3세대 선수들의 선전과 김주형이라는 괴물 신인의 등장으로 한국 골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주니어 골프의 붕괴 현상이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중고골프연맹에 등록된 선수 현황(표1 참고)을 살펴보면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남자 고등학생 선수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2012년 955명이던 수가 2022년에 414명이 됐다. 무려 56.65%가량 줄어든 수치다. 남자 중등부 선수는 474명에서 307명으로 줄어 약 35.23%가 줄었다.

여고부나 여중부는 남자 선수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여자 고등학교 선수는 2012년에 399명에서 342명으로 약 14.29% 줄었고 여자 중학교 선수는 328명(2012년)에서 360명(2022년)으로 오히려 8.89%가량 수치가 늘었다. 물론 여중부도 2017년에 293명, 2018년에 277명, 2019년에 269명까지 줄다가 2020년부터 그 숫자가 늘고 있다.

남고부와 여고부, 남중부와 여중부까지 4개 그룹을 합친 숫자를 살펴보면 2012년에 2156명으로 집계됐고 2022년에 1423명으로 집계되면서 약 34%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를 비교해보면 남자 선수(남고부, 남중부)는 1429명(2012년)에서 721명(2022년)으로 49.55%가량 줄어들었고 여자 선수(여고부, 여중부)는 727명(2012년)에서 702명(2022년)으로 불과 약 3.44%가 줄었다(표2 참고).


남녀 구분 없이 고등부와 중등부만 나눠보면(표3 참고) 고등부(남고부, 여고부)가 2012년 1354명에서 2022년 756명으로 약 44.17% 줄었고 중등부(남중부, 여중부)는 2012년 802명에서 2022년 667명으로 약 16.83%가 줄었다.


이런 현상은 2016년 말, 최서원(최순실)과 정윤회의 딸인 정유라가 승마 선수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하고 대학을 다니는 중에도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입학이 취소된 사건으로부터 비롯됐다.

이것이 불씨가 되면서 체육 특기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2017년 4월, 체육 특기자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을 하는 한편 체육 특기자 부정 입학 근절을 목적으로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학생 선수는 직업 선수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참여할 수 있는 유·무형의 교육 활동에서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제1항과 ‘모든 국민이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른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교육기본법 제3조 등을 근거로 학생 선수의 학습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학생 선수는 소속 학교의 모든 교육 과정(수업, 학급 활동, 학교 행사 등)을 이수해야 하는데 대회 참가나 훈련을 위해 정규 수업을 받을 수 없을 때는 학교장의 허가를 받은 후 결석을 해야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수업일이 180~190일 사이라고 보면 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0조(수료 및 졸업 등)에는 얼마의 수업 일수를 채워야 졸업할 수 있는지 명기되어 있다.

제50조 2항을 보면 ‘학생의 각 학년 과정의 수료에 필요한 출석 일수는 제45조(주 5일 수업을 전면 실시하는 경우: 매 학년 190일 이상)의 규정에 의한 수업 일수의 3분의 2 이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대체로 한 해에 127~130일 이상 학교에 다니고 63~65일 이하로 결석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소 요건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주니어 골프 선수의 경우는 이 규정이 무의미하다. 무단결석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려고 해도 학교장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출석이 인정되는 결석 일수만큼만 대회에 참가하라는 방침이다.

올해 기준으로 180~190일의 수업 일수 중 초등학교는 5일, 중학교는 12일, 고등학교는 25일 정도만 ‘출석 인정 결석’으로 인정되면서 대회 출전 일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선수는 1년에 3~4라운드 경기 6~8개를 나가면 출석 인정 결석 일수(25일)를 모두 채우게 된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는 문체부와 연계해 전국 대회를 주말로 전환하고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지속적으로 감축하려고 한다. 또 대회나 훈련 참가로 인한 출석 인정 결석 폐지를 목표로 2023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학생 선수의 모든 수업 참가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이러자 선수와 학부모는 일반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각 지역의 방송통신고등학교(전국 총 42개교)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방통고는 주말에만 수업을 들으면 되기 때문이다.

연도별 방통고 소속 선수들을 살펴보면 2012년에 불과 37명에 불과하던 숫자가 2017년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되는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표4 참고).

2017년에 59명, 2018년에 118명, 2020년에 173명 그리고 올해 기준으로 전체 학생 선수 756명 중 32.94%에 해당하는 249명이 방통고에 진학했다.


올해 대구에서 열린 제29회 송암배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를 보더라도 여자부 1위 김민솔(수원 수성방통고)을 비롯해 2위 유현조(천안중앙방통고), 3위 김민서(구미방통고)가 모두 방통고를 다니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남자부 2위에 오른 김현욱도 제주방통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023년 LPGA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34위에 오르며 내년도 시드권을 확보한 주수빈 역시 김천중앙고등학교부설방통고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자 만든 교육 정책이 결국 주니어 골프 선수들의 수를 감소시키고 방통고 진학이라는 기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한국 골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이유다.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K골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산업 환경을 개선해온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골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육부의 젱가 블록 빼기식 마이너스 행정이 결국 한국 골프의 근간을 흔들고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 사안에 대해 한국주니어골프연맹과 대한골프협회 관계자들은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학습권 보장이라는 큰 줄기에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면서 “다만 일반 학생들도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무단결석 63일)만큼만이라도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주니어 선수들을 향한 명백한 역차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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