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러스의 라이벌 관계를 쓴 책.
26일 타계한 아널드 파머는 잘 생겼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 혹은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아버지를 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토리가 있었다. 장타를 쳤고 모험을 즐기는 공격적인 경기로 이기든 지든 드라마를 만들었다. 쇼맨십이 배우 뺨 쳤다. 수많은 관중 한 명 한 명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있었다. 그의 경기를 보는 수만 명의 갤러리들은 파머가 나에게 직접 눈을 맞춰줬다고 느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농부, 노동자, 트럭운전사 같은 블루 칼라가 많았다. 그들은 열광적인 파머의 지지자여서 아니(Arnie:아널드의 애칭)의 군대(Army)라고 불렸다. 파머는 고루한 부자들의 스포츠였던 골프를 대중들에게 가지고 왔다. 아니의 군대의 힘은 엄청났다. 그는 텔레비전 보급기에 나타나 매스미디어와 프로 스포츠를 동시에 키운 주인공이었다.
골프 역사상 가장 치열한 라이벌은 파머와 잭 니클러스로 꼽힌다. 골프장에서 샷 경쟁은 물론 광고 출연, 자가용 비행기의 크기에서도 둘은 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골프 실력은 니클러스가 낫다. 니클러스는 메이저 18승, 파머는 7승을 했다. 그러나 인기는 파머가 훨씬 좋았다. 니클러스는 ‘위대한 골퍼’였지만 파머는 ‘골프의 상징’이었다. 치약부터 렌터카, 항공사까지 수많은 회사가 그를 광고 모델로 썼다. 아널드 파머의 로고인 컬러 우산만 붙이면 어떤 제품이든 팔렸다.
당연히 니클러스는 실력이 좋은 자신보다 파머가 더 대우받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반대로 파머는 니클러스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파머는 사석에서 니클러스를 ‘돼지’라고 불렀다. 20대에 니클러스는 뚱뚱했다. 그의 로고인 황금 곰이 돼지처럼 생겼다고 놀렸다. 한 기자가 니클러스의 황금 곰 로고가 달린 옷을 입고 인터뷰를 하러 오자 “로고를 가리키며 이 돼지 옷을 입고 와서 나를 만나려 하느냐”고 화도 냈다.
니클러스는 그 사실을 알고 황금 곰의 다리를 길게 늘였다. 살도 빼고 스타일도 세련되게 바꿨다. 경쟁심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았다. 62년 파머의 고향인 피츠버그 근처에 있는 오크몬트 골프장에서 벌어진 US오픈에서 두 선수가 플레이오프를 벌일 때다. 아니의 군대는 니클러스를 증오했다. 못생긴 니클러스가 자신들의 영웅을 자꾸 이기니 분노하는 것이 당연했다. 니클러스를 화나게 하면 파머가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니클러스가 샷을 하기 전 벙커를 가리키며 “뚱뚱한 돼지, 여기로 쳐라”는 등 야유를 했다. 또 니클러스가 퍼트를 하는 동안 동시에 발을 굴러 땅을 울리게 하며 방해했다.
파머는 그런 갤러리를 뜯어 말렸다. 또 니클러스에게 사과했다. “경쟁하되 존경하는 우리의 관계를 팬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니클러스는 “엄청난 갤러리를 거느린 파머와 경쟁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마이클 조던과 함께 한 농구 선수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골프 선수들 모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니클러스는 “파머와 동시대에 살았던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선수들은 현역시절 치열한 경쟁자와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뒤를 돌아보면 뛰어난 경쟁자와 함께 한 시간들은 매우 소중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쟁자들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니클러스는 파머라는 슈퍼스타를 통해서 골프라는 스포츠가 성장한 점에 대해 감사했고 그의 정신을 이해했다. 니클러스는 파머가 세상을 떠난 26일 “우리는 서로 지켜줬고 이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골프의 인기가 오르면서 매력적인 스타 선수가 나오고 아니의 군대같은 팬클럽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회장에서, 또 온라인상에서 활동이 두드러진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지만 일부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도 보인다. 극성팬들은 ‘선수를 위해서 그랬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 선수에 대한 방해나 악성 댓글 등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다. 아널드 파머처럼 해당 선수도 전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파머가 전인지의 에비앙 우승에 보낸 축전. 골프를 사랑한 아널드 파머의 마지막 축전이 됐다.
파머는 최경주, 양용은, 박세리, 박인비 등 한국 선수들을 포함, 큰 대회나 첫우승하는 선수에게 축전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파머가 생전 마지막으로 보낸 우승 축전이 전인지의 에비앙 우승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의 골프 선수들과 팬들은 ‘경쟁하되 존경하라’는 파머의 메시지도 새겨봐야 할 것 같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