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스탐과 블록이 콜로니얼에서 만나 포즈를 취했다. [사진=PGA투어]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고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선수는 멋지고 용기에 박수를 받는다.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PGA챔피언십의 스타 마이클 블록(미국)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찰스슈왑챌린지(총상금 870만 달러) 대회 전에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리얼컨트리클럽(파70 7209야드)에서 만났다.
20년 전인 2003년 소렌스탐은 이 대회(당시 명칭은 뱅크오브아메리카콜로니얼)에서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1938년 LA오픈에 출전한 이래 65년 만에 정규 PGA투어에 도전했다.
당시 32세의 소렌스탐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무대에서는 무적의 강자였다. 메이저 5승을 했고 5년 동안 ‘올해의 선수’로 꼽혔으며 2001년에는 LPGA투어 선수로는 유일무이하게 한 라운드 59타를 쳤다. 그런데 왜 갑자기 PGA투어에 나왔을까?
2002년 말에 코네티컷의 클럽 프로였던 여자 티칭프로 수지 웨일리가 지역 대회 PGA오브아메리카에서 우승한 것이 계기였다. 그 대회는 이듬해 여름 그레이터하트포드오픈에 출전권을 주는데 여자가 우승한 것이다. 웨일리가 출전 의사를 밝히면서 골프계는 발칵 뒤집혔다. 남자들과 같은 티에서 여자가 출전한다는 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동시에 ‘출전하면 왜 안되냐’는 반문이 일었다. 웨일리는 대회 전까지 체력 훈련을 더 많이 하고 대회를 출전했으나 컷탈락했다. 하지만 그의 과감한 도전은 수많은 프로들을 자극했고 결국 15년 뒤인 2018년 PGA아메리카의 첫 회장에 여자로는 처음으로 선임되었다.
소렌스탐의 티샷 [사진=PGA투어]
웨일리가 뉴스에 오르자 당시 최고의 여자 선수인 소렌스탐에게도 ‘남자 대회에서 초청이 오면 나가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소렌스탐은 망설이지 않고 ‘나가겠다’고 했다. 마침 콜로니얼은 소렌스탐에게 스폰서 초청장을 주었다.
다시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비제이 싱(피지)은 “소렌스탐을 나와 같은 조에 넣는다면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LPGA 동료들 일부도 반대했다. 안젤라 스탠포드는 ‘콜로니얼에서의 결과가 여자 골프에는 해로울 것’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대회가 열리자 180명 이상의 기자들이 취재 신청을 했다. 소렌스탐은 토크쇼와 심지어 시사 프로그램 ‘60분’에도 연속으로 출연했다.
인생 최대의 카메라들이 대기하는 가운데 10번 홀에서 한 소렌스탐의 첫 티샷은 골프 역사상 가장 큰 압박감을 주는 티샷으로 평가된다. 골프장에는 그녀를 응원하는 스티커를 붙인 착용한 소녀들로 가득차 있었다.
첫 티샷은 4번 우드를 들고 255야드를 쳤다. 파3 13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1언더파로 올라갔을 때는 리더보드 선두권에도 올랐으나 결국 후반에 보기 2개를 더해 1오버파 71타를 쳤다. 당시 전장은 파70 7080야드였고 이튿날은 4오버파 74타를 쳐서 96위로 미스컷했다.
블록의 10번 홀 두번째 샷 [사진=PGA투어]
47세의 블록은 지난주 메이저인 PGA챔피언십에서 클럽프로들에게 주어지는 20명의 출전권을 받아 대회에 나왔다. 캘리포니아주 미션비에호의 아로요 트라부코 골프장 헤드 프로로 1시간 레슨비가 150달러(20만원) 정도다.
블록은 오버파가 속출하고 어렵게 세팅하기로 유명한 메이저 대회에서 3일 연속 이븐파를 쳤고 마지막날 파3 15번 홀에서의 멋진 홀인원과 함께 공동 15위로 마치면서 골프 팬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상금 28만8333달러(3억8천만원)는 1922번의 레슨을 해야 벌 돈이었다. 홀인원을 한 7번 아이언을 5만달러(6600만 원)에 팔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풀스윙 시즌2에서 블록을 추가하기로 했다.
찰스슈왑챌린지는 바로 블록을 스폰서 초청했고, 블록은 임시 PGA투어 회원 자격을 얻은 이민우(호주), 제임스 코디와 한 조로 1라운드를 경기했다. 첫 3홀에서 연속 보기를 적어내면서 출발했고 후반에도 더블보기도 나왔으나 멋진 트러블 샷도 보여줬다. 10번(파4 385야드) 홀에서 티샷한 공이 개울을 건너는 다리 중간에 놓였다. 블록은 콘크리트에 놓인 114야드 거리의 공을 쳐서 그린에 올려 파를 잡았다.
대회 명칭에 ‘도전’이 붙은 이 대회는 벤 호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포트워스에서 산 호건은 1946년 이 대회가 처음 열렸을 때 2연패를 했다. 1949년에 처참한 자동차 사고를 당했고 열 번 넘는 수술을 받았으나 불굴의 의지로 재활하고 투어에 복귀했다. 이 대회에서 1952, 53, 59년까지 세 번 더 우승해 통산 5승을 올렸다. 1959년은 자신의 PGA투어 64승 중 마지막 우승이었고 1970년까지 꾸준히 출전했다.
도전자의 전통이 넘실거리는 대회에서 남녀 성별의 벽, 투어와 레슨프로의 벽을 뛰어넘은 선수들이 초청받아 시합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비록 스코어는 떨어질지라도 골프팬들은 성적을 보려 골프장에 가는 게 아니다.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자신들도 그런 용기와 힘을 내러 가는 것이다.
JTBC골프&스포츠에서 27일 새벽 5시부터 2라운드를 생중계한다. 한국 선수로는 아직 PGA투어 우승이 없는 안병훈과 시즌 2승에 도전하는 김시우의 성적이 좋다. 이경훈, 임성재, 김성현까지 5명이 출전한다. 28일과 29일 3,4라운드는 새벽 2시부터 우승자를 가리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