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백규정. 그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진짜 골프를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진 이지연]
30일 오후(한국시간) 스코틀랜드 턴베리 트럼프 턴베리리조트에서 개막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브리티시여자오픈. 1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앉아있던 백규정은 선수들이 지날 때마다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국내 여자 투어 신인왕 출신으로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한 백규정은 “지난 6개월 간 적지 않은 풍파를 겪으며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백규정은 “하나·외환 챔피언십 우승으로 투어 시드를 받으면서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백규정은 지난 해까지 실패를 모르고 살았다. 국가대표를 거쳐 국내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첫 해 3승이나 거뒀다. 유연성을 겸비한 큰 키(1m75cm)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LPGA 투어는 달랐다. 데뷔전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한 그는 두 번째 대회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컷을 통과했지만 74명 중 공동 71위를 했다. 이후로도 3차례나 컷 탈락하는 등 이렇다할 성적을 못 냈다. 백규정은 “시즌 초부터 승승장구한 (김)효주나 (김)세영 언니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흔들렸던 마음을 잡아준 이는 박인비와 유소연이었다. 백규정은 “언니들이 ‘지금은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거야’라고 말해줬다. 내 생각이 비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백규정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달라졌다. 긴 머리를 싹둑 잘랐고, 표정은 밝아졌다. 한국 투어 시절 거침없는 언변으로 ‘버릇 없다’는 오해를 샀지만 이제는 무척 신중해졌다. 백규정은 “불과 1년 전이지만 그 때는 너무 어렸다. 미국에 와서 존중과 배려심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처럼 성적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진짜 골프를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면서 성적은 좋아졌다. 2주 전 마라톤클래식에서 첫 톱 10(공동 5위)에 든 백규정은 30일 1라운드에서 5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다.
31일 2라운드에는 링크스 코스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진짜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 백규정은 시속 40km의 강한 바람 속에서 무려 10타를 잃었다. 그래도 백규정은 실망하지 않았다. 백규정은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워낙 코스가 어렵고 날씨 영향도 있는 곳이라 운이 따라야 한다"며 "미국에 오기 전엔 우승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줄리 잉스터같은 선수를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경기, 한 경기에 심각하기보다 오랫동안 투어를 즐길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LPGA 투어 역사상 일곱 번째로 4대 메이저를 제패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박인비는 2라운드에서 1타를 잃고 2언더파 9위에 올랐다. 박인비는 “강풍 속에 1오버파는 나쁘지 않지만 샷 감각을 못 찾아 아쉽다”고 했다. ‘바이킹의 후예’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3타를 줄여 7언더파 단독 선두에 올랐다.
JTBC골프가 3~4라운드를 1~2일 오후 9시45분에 생중계한다.
턴베리=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