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향은 2부 투어부터 시작해 고단한 미국 생활을 했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이 때 흔들렸던 이미향을 잡아준 것은 아버지였다. 이미향은 " 2부 투어를 1년 더 경험할 생각으로 골프를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뒤 마음이 좀 편해졌는데 거짓말처럼 샷도 잘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성진]
1993년 3월 30일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의 한 병원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결혼 뒤 5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애를 태웠던 부부는 크게 기뻐하며 딸에게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의 ‘미향(美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미향은 아버지 이영구씨가 마흔 다섯, 어머니 신애숙씨가 서른 여섯의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딸이었다. 이름처럼 얼굴도 예뻐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아버지 이씨는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남독녀로 자라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버릇이 없는 아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딸을 엄격하게 대했다. 이미향은 “실수를 했을 때는 혼나지 않았지만 잘못된 습관에 대해서는 크게 혼이 났다”고 말했다.
이미향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또래와 달리 스스로 일을 알아서 하는 아이로 자랐다. 이미향은 “네 살 무렵부터 유치원에도 혼자 갔다. 9층에 살았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작은 키 때문에 버튼을 누를 수 없었고, 10층에 내려 한 층을 걸어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아빠는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쳐다볼 뿐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회상했다.
골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드나들기 시작한 이미향은 고사리 손으로 벙커 정리까지 스스로 했다. 아버지 이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향이 선수가 되고 싶다고 나서자 오히려 탐탁지 않아 했다. 이씨는 “힘든 선수 생활보다는 평범하게 대학을 나와 인생을 살아가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박세리와 함께 라운드를 한 뒤로 골프 선수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은 더 굳어졌다. 이미향은 “‘언니가 정말 소질이 있어 보인다는 칭찬을 해줬고, 그 때부터 선수로서의 목표가 생겼다. 일단 국가대표가 되야겠다고 생각했고, 세계적인 무대로 가야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미향은 골프 선수로는 키가 작은 편(162cm)이다. 체격 조건도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러나 골프는 체격 조건이 전부가 아니다. 악바리같은 근성과 투지가 넘쳤던 이미향은 박세리를 만난 뒤 2년 뒤인 2009년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다. 이미향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것은 꼭 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빠는 내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계속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나중에는 나를 믿어주셨다. 외국 투어로 가겠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고 했다.
마음가짐이 불러온 기적
이미향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2011년 미국과 일본의 퀄리파잉(Q) 스쿨에 응시해 양쪽 모두 2차까지 통과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감히 미국행을 택했다. 이미향은 “원래 일본 투어 쪽을 더 많이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 도전할 거면 더 큰 물에서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부 투어부터 시작한 미국 생활은 듣던 대로 고단했다. 1부 투어처럼 미국 전역을 돌며 대회가 열리는데 1부 투어 선수들과는 달리 대부분을 차로 이동해야 했다. 10시간 운전은 다반사였고, 22시간을 꼬박 달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한 시즌이 다 지나도록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아 투어 카드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흔들렸던 이미향을 잡아준 것은 아버지 이씨였다. 이미향은 “2부 투어를 1년 더 경험할 생각으로 골프를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뒤 마음이 좀 편해졌는데 거짓말처럼 샷도 잘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
*이미향 인터뷰는 월간 JTBC 골프매거진 5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기사는 모바일 매거진(magazine.jtbcgolf.com) 또는 온라인(www.jtbcgolfi.com) 등을 통해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