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스에서 매우 강하고 상승세를 탄 헨릭 스텐손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골프 성적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타이거 우즈가 잘 칠 때는 비교적 쉬웠는데 그 좋은 시절은 갔다. 3월 이후 톱 10에 한 번도 못 들었던 지미 워커가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리라고 본인 말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PGA 챔피언십을 앞두고 “딱 나한테 맞는 코스”라고 했던 로리 매킬로이가 컷탈락하고, 매킬로이보다 더 코스에 맞는 것으로 평가된 더스틴 존슨이 더 나쁜 성적을 낸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골프 대회의 성적은 통계로 드러나는 실력에 더해 퍼트감, 운, 의지 등이 더해지는 것 같다. 감과 운, 의지 같은 것들은 측정이 잘 안 된다.
그래도 예상을 해 보려면 비빌 언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골프의 세계랭킹 시스템이 상당히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테니스나 복싱, 유도에서 랭킹 1위는 약점이 노출되어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골프는 스윙을 방해하거나 상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랭킹의 공신력이 크다.
다른 하나는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주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3라운드까지 1오버파를 친 짐 퓨릭은 최종라운드엔 12언더파 58타를 기록했다. 같은 사람이 쳤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다. 그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
올림픽 골프는 다른 대회에 비해선 예상이 상대적으로 쉽다. 일단 출전 선수 수가 60명으로 일반 투어 대회의 40%에 불과하다. 국가 안배 등으로 실력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선수(200위 이상 16명)도 나오기 때문에 실제 우승 경쟁할 선수는 더 줄어든다.
최경주는 메달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15명 선이라고 봤다. 15명에는 참가 선수 중 세계 랭킹 순으로 24번째인 왕정훈도 포함시켰다. 응원의 성격도 있는 듯하다. 어쨌든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큰 골프의 특성을 감안하면 랭킹 100위 이내인 29명 정도가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랭킹 10위 이내의 특급 선수 중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는 헨릭 스텐손(5위), 버바 왓슨(6위), 리키 파울러(7위), 대니 윌렛(9위)이다.
스텐손이 가장 돋보인다. 세계랭킹이 가장 높고 최근 경기력도 매우 좋다. 리우 올림픽 코스는 영국 바닷가 해안의 골프장인 링크스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코스에서 성적이 좋았다. 스텐손은 그가 출전한 디 오픈 최근 8개 대회에서 우승 한 번, 2위 한 번, 3위 두 번을 기록했다. 올해 대회에서는 최종라운드 63타, 합계 20언더파라는 기록도 남겼다.
버바 왓슨은 최근 성적이 주춤하고 미국 밖으로 나가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링크스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15년 4대 메이저대회 모두 5위 이내에 들었던 리키 파울러와 올 4월 마스터스에서 그린 재킷을 입은 대니 윌렛도 이후 성적이 하향세다.
최경주는 랭킹 10위~20위 선수들도 매우 강한 경쟁상대로 보고 있다. 세르히오 가르시아(11위)는 뛰어난 볼스트라이킹 능력과 경험, 올림픽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플러스 요인으로 꼽힌다. 중요한 대회에서 경기 막판 우승을 놓치던 징크스를 올림픽에서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스틴 로즈(12위)와 패트릭 리드(14위)는 최근 성적이 꾸준하고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특히 애국심이 매우 강하고 관심 끌기를 좋아하는 패트릭 리드가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있다.
매트 쿠차(20위)는 한 주 전까지도 올림픽의 경기 방식도 몰라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어떤 조건에서든 꾸준한 성적을 내는 스타일이다. 정상급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랭킹 50위로 처져 있지만 마르틴 카이머는 메이저 2승을 거둔 저력이 있고 최근 PGA 챔피언십에서 7위에 오르는 등 상승세다.
한국의 두 선수는 올림픽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크다. 안병훈은 올림픽 가문의 영광을 잇겠다는 의지가 있고 왕정훈은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애국심이 커졌다. 병역 문제도 걸려 있다. 병역혜택은 양날의 칼이다.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경주 감독이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경주는 우승 경쟁을 하면 거의 놓치지 않는 불도그다. 왕년에는 필드의 타이슨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두 선수가 브라질 벌판에서 잘 경기하도록 지도할 것이다.
리우 올림픽 코스는 첫 홀(604야드)과 마지막 홀(571야드) 등 파5홀 공략이 열쇠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타를 가진 안병훈이 유리하다. 안병훈은 세계 랭킹 35위로 참가 선수 중 랭킹이 10번째로 높다. 금메달 후보다.
왕정훈은 이보다는 가능성이 적다. 라스베이거스 도박 사이트에서 왕정훈에게 베팅해 금메달을 따면 100배를 받는다. 도박 사이트도 수수료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실제 우승 확률은 100분의 1이 안된다고 그들은 판단한다.
그러나 김경태는 왕정훈을 두고 “중요한 때 먼 거리 퍼트를 넣을 능력이 있는 선수”라고 평했다. 이변을, 혹은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선수라는 얘기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UPI 통신은 금메달리스트로 버바 왓슨을, AP통신은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찍었다. 기자는 헨릭 스텐손의 금메달을 예상한다.
미국에서 매주 판타지 스포츠 골프를 하는 후배가 있다. 몇 차례 선수를 찍어달라고 조르더니 이후 연락이 없다. 기자의 의견을 듣고 선수를 골랐는데 별 재미를 못 본 것 같다.
스포츠 결과를 예상했다가 틀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예측이 틀려도 큰 죄책감은 갖지 않는다. 오히려 때론 맞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예상을 깬 결과가 나올 때 스포츠는 더 짜릿하기 때문이다.
펜싱 박상영은 짜릿한 정도가 아니라 한여름 폭염 속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그의 역전 드라마와 환호를 보고 기자는 그의 검에 찔린 듯 정신이 번쩍 났다.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자신도 상상 못했던 거대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또 세상이 아직 충분히 살만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100분의 1에 도전하는 왕정훈이나 안병훈이 또 다른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를 빈다. 그래 할 수 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