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우. [사진 까스텔바작]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어간다는 건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함정우(30)는 지난해 우승 포함 톱10에 열한 차례나 올라 데뷔 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제네시스 대상을 수상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국내 일인자' 등극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성공'이었지만 그에겐 '넥스트 레벨(다음 단계)'이 남아 있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
안정적인 한국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최종 꿈을 위해 '콘페리 투어(2부) 도전'을 결정한 함정우를 지난달 28일 한 의류 브랜드 화보 촬영장에서 만났다. 지난해 시즌이 끝난 직후 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 도전부터 올해 콘페리 투어, 아시안투어를 병행하며 휴식 없이 대회에 나섰던 함정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살이 확 빠진 모습이었다.
-투어 일정이 빠듯한데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나요?
"딸 소율이가 곧(3월 8일) 첫돌이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잠시 들어왔어요. 해외 투어 일정이 있어도 아이의 첫 생일엔 빠질 수 없잖아요."
-그러면 혼자서 미국 생활을 하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아이가 어리니까요. 최근에 마음이 아팠던 게 새벽에 소율이가 깨서 안아주려고 하는데 낯설어서인지 막 울더라고요. 그때 '내가 굳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국 생활을 택한 게 처음으로 후회가 됐어요."
함정우는 지난해 KPGA 투어 제네시스 대상 특전으로 PGA 투어 Q 스쿨에 응시했다가 공동 45위에 그쳤지만 콘페리 투어 8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올 시즌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5일 기준 콘페리 투어 4개 대회에 출전해 두 차례 컷 통과에 성공했다.
-콘페리 투어 생활이 많이 힘든가봐요.
"어렸을 때 도전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가족들도 보고 싶고 물리적으로는 이동 거리도 길고 코스도 처음 경험하는 거니까 힘들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여기서는 비행기를 타고 대회장에 가야 하는 만큼 동선이 되게 불편하고요. 또 한국과는 잔디가 많이 다르니까 거리가 되게 안 맞더라고요. 어떤 코스는 고산지대에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거리가 나갈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새로운 도전은 확실히 재미있어요. 빨리 적응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 외로운 것만 빼면요. 그나마 (노)승열이 형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KPGA 투어와 비교해 봤을 때 어떤 점이 가장 다르던가요?
"아무래도 비거리 부분에서 차이가 확실히 많이 나요."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부분은요?
"비거리도 늘려야 하고 퍼터도 잘해야죠. 사실 저는 장점도 없고 단점도 없는 선수잖아요. 말 그대로 특출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빠지는 것도 없는? 그런데 콘페리 투어에선 이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그나마 리커버리가 장점이라고 생각해서 장점을 더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단점을 보완하려면 다 해야 하니까. 하하."
-멘털도 되게 좋잖아요.
"네. 다들 낙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여기서 안 되면 '나와 인연이 아닌 걸로' 생각하고 다음 생에 도전하려고요. 하하."
-콘페리 투어 말고도 DP월드투어나 아시안투어를 뛸 수도 있잖아요? 선택지가 많은데?
"콘페리 투어를 우선 순위로 놓고 스케줄을 짜고 있어요. 아시안투어에서 뛰면 몸은 편하지만 저의 최종 꿈은 PGA 투어 진출이잖아요.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꼭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PGA 투어 한 시즌을 뛰는 것만으로도 제 이력에 고스란히 남잖아요. 힘들지만 응원해 주는 아내가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인터뷰는 어디서 하면 좋을까요? 미국? 한국?
"미국에서 보면 좋죠. 하하. 미국에서 보면 확실히 좋은 거고, 한국에서 보게 되면 좀 아쉬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