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승을 거둔 김세영. 어릴 적 골프가 아니라 태권도를 한 것이 오히려 골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LPGA 투어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샷으로 김세영의 롯데 챔피언십 연장전 샷이글을 꼽았다. 김세영이 웨지를 던지며 만세를 부르게 한 18번 홀 칩샷은 최고샷 중 3위였다. 연장전 등 여러 드라마틱한 상황을 감안하면 김세영의 샷이 LPGA 뿐 아니라 올해 골프 전체의 가장 뛰어난 샷이 아니었나 싶다.
김세영이 탄 2015년 신인상은 대단한 것이다. 올해 LPGA 투어 신인들 중 뛰어난 선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김세영은 올해 LPGA 투어에서 버디(406)와 이글(14)을 더한 수가 420으로 가장 많다.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김세영이 올해 이렇게 잘 한 이유를 창문이론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타이틀리스트 퍼포먼스 인스티튜트 설립자이자 의학박사인 그렉 로즈 등이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이 성장할 때 특정한 시기에만 열리는 창문이 있다고 한다. 그 기간이 지나면 창문은 닫힌다. 창이 열린 시기에 소통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세계에는 갈 수 없다고 로즈는 말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을 받아야 자존감이 커지고 전두엽이 발달한다고 한다.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는 말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운동선수에게 꼭 필요한 스피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기도 있다. 스피드를 얻을 수 있는 마법의 창문은 10살 즈음, 파워로 가는 창은 대략 10대 중반에 열린다고 한다. 그 시기에 격렬한 운동으로 스피드와 힘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스피드와 파워는 골프에서 장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김세영의 태권도 돌려차기 동영상을 보고 알았다. 그의 골반은 매우 유연하고 빠르게 회전했다. 김세영은 4세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그는 창문이 열렸을 때 태권도를 통해 스피드와 파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 김정일씨는 “오랜만인데도 아직도 돌려차기 자세가 괜찮더라”면서 “태권도 기마자세가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하체를 강하게 해 골프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돌려차기에서 나오는 힙턴은 골프 스윙할 때는 엔진 비슷하다. 국내 여자 투어에서 가장 멀리 치는 박성현도 어머니가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다고 한다.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 골프 이외의 다른 운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골프에 도움이 된다는 설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연습장에서 공을 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며, 그 시간에 다른 스포츠를 하면서 재미있게 뛰어 노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거다. 골프채만 휘두르는 것은 똑같은 근육과 관절을 계속 쓰기 때문에 몸이 고장 날 가능성도 크다.
로즈 박사는 "장타를 치고 롱런을 하려면 소프트볼이나, 하키 등 골프와 비슷한, 볼을 때리는 격한 스포츠를 하면서 힘과 스피드를 키운 후에 골프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물론 거기에 태권도도 넣어야 할 것 같다.
새벽부터 밤까지 스윙을 하면서 자라는 ‘한국형’ 선수들이 여자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 보다 많은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다쳐 일찍 사라졌다.
몸뿐이 아니다. 정신도 그렇다. 전 세계에 학교에 안 가고 줄곧 공만 치는 주니어 선수는 한국밖에 없는 듯하다. 골프가 지겹고, 자신의 인생을 모두 앗아간 것 같다면서 운동을 싫어하는 선수들이 있다. 우울증을 겪는 선수들이 꽤 된다. 조로하는 일도 흔하다.
박인비와 리디아 고가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각각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학교에 다녔고 상대적으로 적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동을 했다. 두 선수를 보면 스파르타식 훈련의 한계가 보인다.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한 유소연은 “짧은 시간 동안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이 좋아졌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해 봤다. 여러 가지를 해봤기 때문에 내가 세상의 모든 것들 중 골프를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혹시 골프 말고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내 선택에 자신이 있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들에게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 공을 잘 칠 수 있는 스피드와 힘 뿐 아니라 역경을 이기고 삶을 즐기는 방법도 알게 해줘야 한다. 그 것이 작은 골프 공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지혜이기 때문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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