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빨간 바지를 입고 우승 경쟁을 벌이는 김세영은 무서울 게 없어 보인다.
김세영의 ‘긴 빨간 바지’가 다시 한 번 더 위력을 발휘했다.
19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코올리나 골프장에서 벌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다. 김세영은 연장전 첫 홀에서 샷 이글을 낚아 박인비를 따돌리고 시즌 2승을 따냈다.
김세영의 극적인 역전 우승의 순간에는 항상 '긴 빨간 바지'를 입었다. 2013년 국내 투어 한화 금융 클래식에서 유소연에게 6타 뒤졌다가 샷 이글과 홀인원으로 역전 우승을 했을 때도 긴 빨간 바지를 입었다. 또 올 시즌 첫 승을 역전승으로 거둔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도, 이번 롯데 챔피언십에서도 김세영은 긴 빨간 바지를 선택했다.
반면 '짧은' 빨간 바지를 입고 나온 지난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에서는 3타 차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헌납했다. 당시 김세영은 '철녀' 스테이시 루이스의 기에 눌려 자신의 경기를 펼치지 못했고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우승은 브리타니 린시컴의 차지가 됐다.
결국 김세영은 ANA 인스퍼레이션 때의 빨간 반 바지가 아닌 긴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서 다시 한 번 마법을 일으켰다. 앞선 상황이 아니라 추격할 때에 빨간 바지는 상대에게 더 공포를 주고 있는 셈이다.
김세영의 빨간 바지는 태권도인 출신인 아버지 김정일씨의 조언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사주를 보러 갔다가 세영의 불같은 성격을 눌러주는 데 빨간색이 잘 맞는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골프가 멘털 스포츠인데 빨간색이 세영의 생체 리듬과 잘 맞아 입을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빨간 바지를 입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운이 샘솟는다. 그래서 마지막 날엔 무조건 빨간 바지를 입는다”고 털어놓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빨간 셔츠를 입고 세계 골프 무대를 정복했다. 김세영도 우즈처럼 빨간 바지의 공포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김세영은 “전성기 시절 우즈가 보여준 빨간 셔츠의 공포처럼 카리스마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은 물론 세계랭킹 1위가 꿈인 김세영의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더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김세영이 필드 위에 수놓을 긴 빨간 바지의 마법이 얼마나 더 무서워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창우 기자 seo.cha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