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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만 17차례 … 양자령, LPGA 문 열었다

정제원 기자2014.12.09 오후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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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키만한 드라이버를 휘두르던 ‘골프 신동’은 어느새 어엿한 숙녀가 됐다. Q스쿨을 통과한 양자령은 내년부터는 동갑내기 김효주·백규정 등과 LPGA 1부 투어에서 샷 대결을 벌인다. [중앙포토]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난 소녀는 지금까지 이사를 17차례나 했다. 2002년 태국으로 건너가 방콕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로 전학을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는 스코틀랜드에서 다니다가 경기도 남양주의 광동고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산다. 오클라호마주립대 3년생이다.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던 지난 10여 년간 이 소녀와 줄곧 함께 한 것은 골프공이었다. 골프공 하나에 인생을 건 ‘골프 노매드(nomad·유목민)’가 마침내 꿈을 이뤘다.

이 소녀의 이름은 양자령(19). 2005년 3월 중앙일보에 ‘골프 신동’으로 소개됐던 바로 그 소녀다.

양자령은 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의 LPGA인터내셔널 골프장에서 끝난 Q스쿨 최종 5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합계 4언더파로 공동 18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모두 154명.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Q스쿨에선 상위 20명에게만 내년도 출전권을 주는데 양자령은 마지막 홀 버디에 힘입어 극적으로 출전권을 따냈다. 양자령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 아쉽게 조건부 시드를 받았지만 LPGA 투어 대회 수가 늘어 1부 투어에 출전할 기회는 적지 않다.

전반 9홀에서 보기 2개에 더블보기도 1개를 범하면서 4타를 까먹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양자령은 후반 들어 힘을 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도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냈다. 마지막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지 못했더라면 그는 내년에 또다시 ‘지옥의 레이스’를 치러야 할 형편이었다.

양자령은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Q스쿨까지 치르느라 정말 힘들었다”며 “그동안 뒷바라지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디아 고(17)나 동갑내기 김효주·백규정 같은 선수들이 프로에서 활약하는 걸 보고 부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대학 생활을 체험한 뒤 프로에 가게 됐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자령이 처음 골프 클럽을 잡은 것은 여섯 살 때. 1년 뒤 주니어 공식 대회에서 92타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아홉살이던 2005년에는 드라이버로 242야드를 날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양자령은 크고 작은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하지만 ‘골프 신동’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니어 무대에선 독보적이었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쇼트게임도 좋았지만 아마추어와 프로의 무대는 엄연히 달랐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그의 샷은 흔들렸다. 대부분의 국내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포기한 채 스파르타 훈련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그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일찌감치 프로에 데뷔한 또래들이 억대 상금을 받는 동안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운동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골프를 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었다. 장학금을 주는 곳을 골라 학교를 옮기다보니 어느새 전 세계를 떠도는 골프 노마드가 돼 버렸다. 사춘기 내내 극심한 성장통에 시달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양자령은 다시 골프화 끈을 동여맸다. 오클라호마주립대 금융학과(Finance)에 진학한 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동료들과 함께 힘차게 클럽을 휘둘렀다. 2005년 당시 1m39cm였던 키는 9년 만에 1m69cm로 자랐다. 지난해 전미대학선수권(NCAA)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는 미국의 대학 유망주 12명 중 하나로 뽑혔다. 그리고는 마침내 LPGA 무대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아버지 양길수(53)씨와 어머니 김분자(50)씨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전 세계를 함께 떠돌아 다녔다. 이날 Q스쿨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데이토나비치에서 오클라호마 집까지 20시간이 넘는 고속도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양씨는 “태국 방콕과 파타야, 라용에 이어 미국 피닉스, 한국의 남양주와 구리, 인천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댈러스, 오클라호마까지 이사를 17차례나 다녔다. 이 정도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아닌 ‘양부17천지교’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라며 껄껄 웃었다.

중견 기업의 해외 주재원으로 일했던 양씨는 2001년 창단됐다가 지금은 사라진 웅진코웨이 골프단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양자령의 언니 자경(23) 씨는 옥스포드 법대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런던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양씨는 “자령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경이는 제대로 봐 주지도 못했는데 잘 자라줘 고맙다”며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지만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자령이를 도와준 많은 분들께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Q스쿨에서는 호주교포 이민지(18)와 재미교포 앨리슨 리(19)가 합계 10언더파로 공동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또 장하나(22·비씨카드)·김세영(21·미래에셋)·박주영(24·호반건설) 등과 아마추어 김수빈(19)이 Q스쿨을 통과해 이미 시드를 확보한 김효주(19·롯데)·백규정(19·CJ오쇼핑) 등과 세계 무대에서 샷 대결을 펼치게 됐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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