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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박차고 나온 맹수 백규정

성호준 기자2014.11.22 오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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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타이거 우즈를 원하는 백규정이 호랑이처럼 포즈를 취했다. 그의 손톱엔 하트 모양이 새겨져 있다. [네이플스=성호준 기자]

환영 브라스 밴드나 레드 카펫 같은 것은 없었다. 국내 투어에서 4승을 거둔 슈퍼루키 백규정이지만 LPGA 투어에선 풋내기 무명 선수 중 한명에 불과했다.

700여명의 팬클럽을 몰고 다니던 스타 백규정은 조용히 미국에 상륙했다. 하나외환 챔피언십 우승으로 LPGA 투어 시드를 받은 백규정은 “내년을 미리 대비하겠다”며 시즌 최종전 CME 투어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 주 네이플스에 짐을 풀었다.

그가 LPGA 투어에 첫 발을 디딘 19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둘째 날은 남부 플로리다답지 않게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백규정은 행복해 보였다. “한국 선배들은 물론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나에게 연장전에서 진 브리타니 린시컴까지도 잘 왔다고 해줘서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서로 답답하게 하고, 후배들을 누르는 분위기 비슷한... 여기 분위기 너무 좋아요.”

2014년 백규정은 좌충우돌이었다. 그가 가는 곳에 사건도 함께 터졌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버릇없는 신인이라는 쑤군거림은 여러 번 나왔다. 동반자인 장하나가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됐는데 마커인 백규정이 일부러 그랬다는 소문이 돌았다. 벌타 관련, 심판과 마찰도 있었다.

백규정은 반성을 한다. “융통성 있게 언니들한테 살갑게 할 수도 있는데 모자랐죠. 후배들에게는 잘 해주는데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 선배들이 뭐라 하면 ‘어 그랬어요’ ‘예, 아닌데요’라고 무뚝뚝하게 답하니까 오해도 많이 생겼나 봐요.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다 와일드하고 다 덩치도 크니까 더 눈에 뜨인 것 같아요. 너무 솔직했나 봐요.”

그러나 문제가 된 일들은 오해라고 했다. 구미 출신인 백규정은 “나는 경상도 의리녀라서 시원시원하게 다 얘기 한다”라고 했고 그의 말대로 솔직했다.

백규정의 말이다. “경기위원장에게 대들었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어서 얘기했고,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럴 거에요. 내가 벌타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했는데 무시했어요. 선수의 권리가 있으니 경기위원장님이 내 얘기를 들어본 후 벌타를 받으면 상관없는데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건 옳지 않잖아요."

그의 말은 이어졌다. "(장)하나 언니 사건은 내가 잘 못한 부분도 있어요. 마커인 내가 스코어를 잘 못 적은 거니까. 그래도 얼마 전에 언니에게 물었어요. 내가 진짜 일부러 그런 것 같느냐고. 십몇 년 동안 나를 봤으면서 내가 그런 것 같냐고요. 나는 공을 안치면 안쳤지 알을 깐다거나 하는 비겁한 성격이 아니잖아요라고 했더니 언니도 ‘다 안다. 결과적으로 그건 자기가 미안하게 됐다’고 했어요."

"특정 선배 언니에게 인사를 안 한 것도 그래요.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똑같이 할 것 같아요. 언니에게 계속 인사를 했는데 계속 무시하고 갔으니까요. 계속해서 인사를 받지 않는 선배에게 제가 인사를 하기도 어려운 거잖아요.”

그런 백규정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다. 공 잘 치는 백규정이 선배를 무시한다는 얘기와 선배들이 뛰어난 후배를 견제한다는 의견이다. 둘 중 어떤 경우든 출중한 실력을 가진 백규정은 모난 돌이었고 국내 투어에서 정을 맞았다. 그리고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좁은 무대에서 뛰쳐나와 LPGA 투어에 왔다.

백규정은 숱한 사건사고 속에서도 성적이 좋았다. 골프는 고도의 멘탈 게임이다. 사건 하나하나가 선수 경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 이겨내고 일어섰다. “맷집이 강한 것 같다”고 했더니 백규정은 “나도 손 떨리고 가슴이 콩닥 콩닥거리고 아주 어려워요. 다른 선수들하고 똑같아요. 그러나 그걸 잘 안보여주려 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내년 목표는 당연히 신인왕이다. LPGA 투어에 한국 선수들이 대거 몰려 온다. 이미 시드를 확정한 라이벌 김효주 말고도 김세영, 장하나, 박주영, 이정은 등이 Q스쿨에 신청했다. 호주 교포인 이민지도 내년 나온다. 백규정은 “다들 실력은 비슷할 거에요. 미세한 차이가 내년 신인왕을 가를 것이고 또 미래의 승자를 가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미세한 차이’에 대해 백규정은 “우선 내년이라면 잔디에 대한 이해, 쇼트게임, 시차적응, 음식 적응 등이 될 것 같아요. 민지나 리디아는 외국에서 자라서 잔디를 잘 알고 쇼트게임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음식을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소한 게 장점이라니 사실 내가 잘 하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실력으로 이 정도 했으니 그 단점을 보완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리디아 고는 함께 경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효주에게 물어봤더니 ‘퍼터를 아주 잘 한다’고 하데요. ‘효주 너 보다 잘 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도대체 나보다 얼마나 더 잘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궁극적 목표는 여자 타이거 우즈다. “저는 일곱 살에 골프를 시작했고 그 때는 박세리와 타이거 우즈 밖에 몰랐어요. 그 두 선수가 나의 꿈이었고 그게 저의 목표에요. 저는 여자 타이거 우즈가 되고 싶어요.” 백규정이 아직 호랑이는 아니다. 그러나 맹수 기질은 확인됐다. 얌전하고 공손하고 말 잘 듣는 후배로 지내야하는 굴레를 끊고 LPGA라는 커다란 밀림으로 뛰쳐나온 백규정이다.

그는 LPGA라는 거친 무대에서 홀로 싸워야 한다. 이 곳은 인사 잘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공을 못 치는 선수는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더 비정한 무대다. 유소연은 “규정이는 어릴 때부터 봤는데 남자처럼 공을 치는 화끈한 스타일이다. 한국 투어에서는 코스 세팅이 다 비슷했는데 여기는 코스마다 다르다. 적응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잘 견디면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백규정은 일단 미국 첫 라운드는 조심스럽게 치렀다. 21일 열린 CME 투어 챔피언십 첫날 백규정은 3오버파, 2라운드에서는 1언더파를 쳤다. 백규정의 롱게임은 LPGA 투어에서도 수준급이었다. 샷 거리가 좋고 아이언을 그린에 잘 세웠다. 그러나 그에 비해 스코어는 좋지 않았다. 퍼트에 아직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네이플스=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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