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블란이 16번 홀에서 볼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R&A]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미국)가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건 선수의 탁월한 실력 때문이지만, 대회 차원에서 보면 오크힐 16번 홀의 페어웨이 벙커가 경기의 흐름을 바꾼 역할을 했다.
켑카는 22일(한국시간) 뉴욕 로체스터 오크힐 컨트리클럽의 파4 464야드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서 4타차로 격차를 벌리면서 한 타차까지 맹 추격하던 동반자인 빅터 호블란(노르웨이)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었다.
당시 16번 홀로 돌아가보자. 켑카의 티샷은 290야드 지점에 놓인 페어웨이 오른쪽 벙커를 살짝 넘겨 311야드 지점의 내리막 러프에 떨어졌다. 157야드 지점에서 절묘한 세컨드 샷으로 홀 1.2미터 지점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켑카의 16번 홀 세컨드샷 [사진=PGA아메리카]
반면, 13, 14번 홀 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린 호블란은 티샷이 그 벙커에 빠졌다. 핀까지는 174야드가 남은 상황에서 호블란 두번째 샷은 벙커턱 바로 위 촘촘한 잔디에 박혔다. 벙커에도 공의 일부가 닿은 듯한 상황이라 경기위원이 출동했다.
경기위원은 그 지점이 벙커가 아닌 일반구역이라고 판정하고 규칙 16.3에 따라 벌타없이 홀과 가깝지 않은 러프에서 클럽 한 개 길이 지점에 드롭하도록 했다. 호블란은 러프에 드롭한 뒤 세번째 샷을 했으나 결국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골프룰 16.3b/1에 따르면 구제 절차는 플레이어가 일반 영역에서 공이 박힌 바로 뒤에 있는 지점과 홀에서 가깝지 않은 가장 가까운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한 클럽 길이 내에서 공을 드롭하고 다음 플레이를 이어간다고 정의한다. 그 상황에서 벙커에 드롭해야 하는가, 혹은 벌타를 받아야 하는가 의문을 품지만 일반 구역으로 포함되면 무벌타 구제된다.
코너스의 16번 홀 서드샷 [사진=PGA아메리카]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전날에도 똑같은 지점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선두를 지키던 코리 코너스(캐나다)는 이 벙커에 빠져서 두번째 샷을 했다. 그런데 다들 볼을 찾지 못했다. 공은 벙커 턱 위의 잔디에 박혀 있었다.
공의 각도가 약간만 높았어도 그린에 떨어져 버디를 노릴 상황에서 코너스는 벙커 옆의 긴 러프에 공을 무벌타 드롭했다. 벙커가 아닌 일반구역에서 홀에 가깝지 않은 지점은 깊은 러프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한 세번째 샷은 그린 앞 25미터 지점의 러프에 떨어졌고, 결국 더블보기로 마치면서 선두에서 내려오게 됐다. 여기에 좌절한 탓인지 코너스는 마지막날은 5타를 잃고 공동 12위로 마쳤다.
리브골프 선수인 켑카는 지난해까지 부상에 시달렸으나 차츰 몸을 회복하고 3번째 워너메이커 트로피이자 5번째 메이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3라운드까지 파를 했고 마지막날 버디까지 선사한 그 홀이 무척 고마울 것이다.
켑카는 넘겨주고 호블란과 코너스를 잡았던 16번 홀 벙커에는 ‘리브벙커’라는 별칭이 생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