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야와 모리야 주타누간 자매는 태국 골프를 대표하는 LPGA 투어 선수들이다.
아리야 주타누간이 태국의 길고 길었던 ‘잔혹사’를 끊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승을 고국에 안겼다.
휴양지로 유명한 태국은 1년 내내 골프를 할 수 있는 나라다. 골프 코스도 다양하다. 골프에 최적의 조건이라 좋은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18년 전인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태국의 골프 영웅이 탄생할 뻔했다. 당시 태국 출신의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이 박세리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다. 역대 US여자오픈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연장 20홀 혈투 끝에 박세리가 우승했다.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도 이 연장전에서 나왔다.
만약 추아시리폰이 우승했다면 한국에 ‘박세리 키즈’가 탄생했던 것처럼 태국에는 골프붐이 일어났을 것이다. 추아시리폰처럼 태국에는 유망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18년 전에 꼬이기 시작한 태국의 LPGA 투어 우승 도전은 고난의 연속으로 변했다.
한국 선수들이 번번이 태국의 우승을 가로 막았다. 2013년 18세의 아마추어였던 주타누간이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우승 기회를 맞았다. 2타 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주타누간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타누간은 홈팬들 앞에서 이글로 멋지게 우승을 만드려고 무리하게 2온을 시도하다 결국 트리플보기를 적으며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쳤다. 먼저 경기를 끝냈던 박인비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인비는 이 우승 후 상승곡선을 그렸고, 메이저 3연승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올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도 태국의 포나농 팻럼은 장하나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4월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주타누간은 마지막 3홀을 남기고 2타 차 선두를 달렸지만 3연속 보기를 적어내면서 우승 문턱에서 또 다시 좌절했다. 주타누간은 “이 역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9일 끝난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도 주타누간은 역전패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듯 보였다. 3라운드 후반 9개 홀에서 무려 8개나 버디를 낚았던 주타누간은 경기 종반에 퍼트를 앞두고 머뭇머뭇 거렸다. 16번 홀에서 2m 버디 퍼트를 놓쳐 달아날 기회를 놓쳤고, 17번 홀에서는 1.5m 파 퍼트도 넣지 못했다. 18번 홀에서는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고도 페어웨이를 놓쳤다. 세컨드 샷이 그린 앞 러프에 떨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주타누간은 어려운 칩샷을 핀 1m 옆에 잘 붙였다.
남은 파 퍼트가 어려운 라인은 아니었지만 이민지에 앞서 퍼트한 게 중압감을 덜어내는데 도움이 됐다. 주타누간은 제일 마지막으로 챔피언 퍼트를 한 게 아니라 이민지에 앞서 퍼터를 들었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만약 3년 전 혼다 타일랜드 때처럼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퍼트를 했다면 긴장감은 배가됐을 것이다. 주타누간은 1~3라운드에서 퍼트를 28-29-26개를 기록하며 빼어난 퍼트감을 뽐냈는데 이날은 32개를 기록했다.
주타누간은 2015 LPGA 투어 Q스쿨을 통과하며 미국 무대에 입성했다. Q스쿨 코스에서 김세영보다 티샷을 30야드나 더 멀리 보내는 괴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폭발적인 파워를 지닌 주타누간은 드라이버로 280야드를 쉽게 보낼 수 있는 장타자다. 하지만 2015년 바하마 클래식에서 연장 끝에 패하고 나서 드라이버 입스(공포증)를 겪었다. 10개 대회 연속 컷 탈락하는 등 절치부심하는 시간을 보냈다. 드라이버가 조금씩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불안감은 있다. 그래서 주타누간은 이날 17, 18번 홀에서 쉽게 드라이버를 꺼내들지 못했다.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에서는 아예 드라이버를 빼고 경기를 했다.
그래도 주타누간은 장타를 날렸다. 최종 라운드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83야드를 찍었다. 대회 평균은 273야드였다. 올 시즌 드라이브샷 거리 1위를 달리고 있는 렉시 톰슨(미국)에 전혀 밀리지 않는 파워를 지닌 셈이다.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은 주타누간뿐 아니라 태국 골프의 시금석이 될 만한 우승이다. 골프채널은 “주니어 시절 최고의 재능을 뽐냈던 조던 스피스가 먼저 성과를 거뒀고, 이제 아리야 주타누간이 첫 승을 챙겼다”고 평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