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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천재 소녀 리디아 고의 국적

성호준 기자2015.09.15 오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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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는 하늘에서 내려온 뉴질랜드 국기를 두르고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골프파일]

알프스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에비앙 골프장 창공 위에서 파란색 뉴질랜드 국기를 단 낙하산이 내려왔다. 지난해엔 태극기가 내려왔다. 김효주가 이 대회에서 우승해 태극기를 두르고 미소를 지었다. 올해는 리디아 고가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뉴질랜드 국기를 두른 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에비앙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는 전년도 우승자의 국기가 걸린다. 여기 걸려 있던 태극기도 리디아 고의 우승과 함께 뉴질랜드 국기로 바뀌었다. 메이저 우승 이후 목표에 대해 리디아 고는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뛰는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리디아 고의 나라는 뉴질랜드다.

골프 천재 소녀 리디아 고의 국적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국내 팬들이 있다. 기자의 생각은 반대다. 그가 프로 전향을 할 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뉴질랜드를 택한 것은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리디아 고 뿐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도 뉴질랜드 국적을 유지한 것이 좋다고 본다. 물론 리디아 고가 고보경으로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당연히 한국 국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살다가 프로가 될 때쯤 슬그머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릴 적 유학이나 이민을 간 한국계 선수들이 좋은 골프 환경을 가진 현지에서 무료 라운드와 레슨 등을 받는다. 그러다 프로로 전향할 때쯤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골프 인기는 한국이 최고다. 기업의 스폰서를 받기엔 한국 국적이 훨씬 낫다고 판단해서다.

태국에서 성장한 송아리·나리 자매가 한국 국적을 받았을 때 현지 골프계는 언짢게 생각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와 호주 등에선 주니어 시절 혜택만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선수들 때문에 한국계 선수는 국가대표로 뽑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아마추어부터 엄청난 활약을 한 리디아 고의 가족도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리디아 고는 프로 전향시 한국 기업으로부터 스폰서 제의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현재 계약한 회사들보다 후원 액수가 컸다. 그러나 한국 회사들은 조건을 달았다. 리디아 고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교포 골프 선수들에 대한 여론이 나빴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국적을 버리고 한국에 왔다면 또 어글리 코리안이란 손가락질을 받았을 테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을 것이다. 리디아 고의 가족이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본다. 리디아 고는 “두 가지 나라에 대한 정체성이 있지만 한국 사람이 우승하거나 잘 하고 있으면 기쁘고 한국 팬들이 사랑해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리디아 고의 진심이라고 본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개인전이다. 가끔 단체 경기를 하면 우리 편, 다른 편이 확 나뉜다. 지난해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한국이 고전한 이유는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교포 민지 리(이민지)에게 패하면서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 인터내셔널 크라운이나 올림픽 등에서 한국 선수가 리디아 고나 민지 리, 엘리슨 리, 노무라 하루 등 한국계 선수들에게 패할 수도 있다.

만약 그래도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 쿨하게 외국에 나가서 성공한 한국계 선수를 칭찬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외국에 있는 교포가 유명 배우나, 유명 과학자가 되면 우리는 자랑스러워한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나와도 그렇다. 우리는 하인스 워드를 얼마나 멋지게 생각했나. 워드가 한국과 대결할 일이 없는 풋볼 선수라서 좋아한 것은 아니다.

교포 선수를 보면서 인재를 해외로 나가게 한 한국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옳다. 쇼트트랙 안현수를 러시아 빅토르 안으로 만든 우리 내부의 불합리한 문제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교포는 한국이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야 할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다. 잘 되도록 응원해야 한다.
토종 한국 선수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경기한다. 배상문 병역 사태에서 보듯 한국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 비해서 불리하다. 외국 국적 선수에는 교포 선수들도 포함된다. 꼭 군대문제가 걸린 남자만 불리한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덥고 추운 날씨, 비싼 그린피, 강압적인 교육 문화 등 한국 토종 선수들은 악조건을 이겨야 한다.

그래서 기업이 선수 후원을 할 때 가능하면 한국 선수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허정구배 한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오래 써서 구멍이 숭숭 뚫린 장갑을 끼고 경기하는 선수를 봤다. 한국에도 안쓰럽게 운동하는 선수가 너무 많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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