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와 제이슨 해밀턴.
22일 열린 LPGA 투어 호주 여자 오픈 최종라운드 18번 홀에서 리디아 고는 옆 홀인 1번 홀 페어웨이로 티샷을 쳤다. 실수가 아니었다. 일부러 그랬다. 핀이 그린 오른쪽에 꽂혔을 때 1번 홀 페어웨이에서 그린 공략이 더 쉬어서다. 앞에 벙커도 사라지고 각도도 훨씬 좋다. 도그레그 홀이라 거리도 손해볼 것이 없다.
리디아 고는 핀 1.5m 옆에 세컨드샷을 붙였다. 2라운드에서도 그렇게 했다. 반면 대다수의 선수들은 18번 홀 페어웨이에서 벙커 바로 뒤에 있는 핀을 공략하느라 애를 먹었다. 파도 대부분 어렵게 잡은 파였고 보기도 많이 나왔다. 한 타 차 상황이었다면 큰 차이가 생길 수도 있는 전략 차이였다.
도그레그 홀에서 옆 홀로 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종종 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9번홀은 왼쪽 도그레그 홀이다. 9번홀 왼쪽에 나란히 달리는 1번 홀 페어웨이로 티샷을 하면 유리했다.
그래서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은 9번홀 그린의 형태를 바꾸고 벙커를 새로 만들어 1번 홀로 치면 불리하게 바꿨다. 1979년 US오픈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왔다. 1라운드에서 론 힌클이 8번홀에서 17번 페어웨이로 치고 2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은 일도 있다. 그날 저녁 조직위는 급히 8번 홀 티잉그라운드 옆에 나무를 심어 옆 홀로 치지 못하게 막았다.
코스 설계자와 조직위는 옆 홀로 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빈 틈은 있다. 특히 거리가 나고 컨트롤이 가능한 프로 선수들은 틈을 찾을 수 있다. 버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옆 홀 치기를 시도할 것이다. 일종의 창의성이고 전략이다.
그래도 빈 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경험이 많지 않은 리디아 고를 누가 옆 홀로 치게 만들었을까. 그의 캐디인 제이슨 해밀턴이다. LPGA 투어에서 가장 뛰어난 캐디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청야니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캐디이기도 하다.
청야니의 옆 홀 치기도 유명하다. 2011년 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최나연과 우승 경쟁을 하다가 13번 홀에서 오른쪽인 14번 홀로 티샷을 했다. 파 5인 이 홀에서 청야니는 약 30야드의 거리와 홀을 공략할 좋은 각도를 얻었다. 쉽게 2온에 성공했고, 버디를 잡았고, 주도권을 잡았고, 우승했다.
하나은행 챔피언십이 열린 스카이 72골프장 오션코스 13번 홀은 평소에 옆 홀로 치면 OB처리를 했다. 그러나 큰 대회가 열리면 코스 내 대부분의 OB 말뚝은 뺀다. OB는 코스와 코스 바깥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주역할이다.
한국에서는 골프장들이 진행을 빨리 하려고(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고), 혹은 안전상 이유로 거의 매홀 페어웨이 양쪽에 OB말뚝을 박아 놓지만 대회조직위는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 제대로 된 골프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OB말뚝을 제거한다.
당시 최나연은 매우 억울해 했다. 대회 중 말뚝을 빼는 것을 몰랐고 따라서 13번 홀에서 옆 홀 페어웨이로 쳐도 되는 것도 몰라서다. 청야니에 비해서 준비가 덜 됐다고 자책했다. 그는 스카이 72골프장 홍보대사였고 자신의 이름을 딴 홀도 있었다면서 매우 아쉬워했다.
최나연이 잘 못했다기 보다는 해밀턴이 노련했다. 연습라운드에서 해밀턴은 청야니에게 14번홀로 쳐보라고 하고 가서 거리도 정확히 계산해 놨다. 그 문제의 인물 해밀턴이 이번에도 리디아 고를 도운 것이다.
리디아 고는 캐디 복이 없었다. 지난해 말 신인왕 수상식장에서 감사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여덟 명 가량의 캐디 이름을 댔다. 타이거 우즈의 캐디를 했던 콧수염 캐디 제프 코완부터 미셸 위의 전 캐디, 오초아의 전 캐디 등 거물 캐디들, 또 로컬 캐디 등 무명 캐디까지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 중 리디아 고와 딱 맞는 사람은 없었다. 리디아 고가 시상식장에서 여러 캐디 얘기를 꺼낸 건 자신이 그만큼 캐디 복이 없었다는 반어법 농담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함께 하는 제이슨 해밀턴과의 조합은 괜찮아 보인다. 리디아 고는 캐디의 조건으로 “유머가 있고 내 마음 속의 불을 붙여줄 사람”이라고 했다. 해밀턴은 가끔 한 두 타를 줄여줄 전략도 갖고 있기 때문에 플러스 알파 요인을 갖고 있다.
LPGA 역사를 쓰는 리디아 고가 캐디와도 멋진 이야기를 남기기를 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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