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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이정은의 골프 인생 2막

김현서 기자2022.07.04 오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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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5. [사진 JTBC골프매거진/이우헌 포토그래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포츠 중계의 해설을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다. 18번 홀 장갑을 벗을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건 골프도 마찬가지다. 1988년생으로 올해 34세가 된 이정은에게 골프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30대 중반에 골프 인생 2막을 활짝 열어젖힌 이정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정은은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5승을 거둔 베테랑이다. 그리고는 2015년 27세의 늦깎이 나이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에서 '9년 차 베테랑' 선수로 편안하게 투어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동경했던 미국 무대를 택했다. 2017년부터 풀 시드를 받아 본격적으로 활동한 게 벌써 6년 째다.
꿈에 그리던 미국 무대를 밟았지만, 첫 승의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이정은은 LPGA 캄비아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당시 세계랭킹 175위였던 이정은은 대회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낚으며 세계랭킹 1위 고진영에 4타 차 준우승을 차지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근성이 LPGA 투어 개인 최고 성적으로 이어졌다.



우승만큼 가치 있었던 준우승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정은은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뽐냈다. 지난해 준우승 심정을 묻자 "우승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재미있는 경기를 했기 때문에 괜찮다. 대회 마지막 날에 이글을 뽑아내며 명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앞으로 우승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준우승을 차지한 뒤 마치 우승한 것처럼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준우승을 했는데도 지인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엄청나게 오더라고요. '이러다 우승하면 진짜 들썩들썩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웃음)."

수백 개의 메시지 중 그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것은 친한 언니에게서 온 '그냥 잘 될 줄 알았어'라는 문자였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잘할 줄 알았어, 그 실력 어디 안 가니까'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마음에 확 와 닿더라고요." 첫 승을 향한 고단한 여정의 마음고생을 알아준 지인의 한 마디가 이정은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고마운 친구 최나연

이정은은 박인비를 비롯해 신지애, 이보미, 최나연, 김하늘 등과 함께 한국 여자골프의 '천재 세대'인 1988년생 용띠 클럽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동갑내기 6인방은 1990년생인 막내 유소연과 함께 7명으로 구성된 모임 'V157'을 만들었다. 이 친목 모임이 결성된 해(2018년 12월)에 7명의 승수를 모두 합한 숫자가 무려 157(신지애 54승, 박인비 27승, 이보미 25승, 유소연 17승, 최나연 15승, 김하늘 14승, 이정은 5승)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정은은 'V157' 멤버 중에서도 특히 최나연과 '찐 우정'을 드러내고 있다. 최나연의 유튜브 채널 '나연 이즈 백'을 통해 최나연과 환상의 케미를 뽐내며 골프계 대표 절친으로 인정받았다. 사실 이정은에게 최나연은 친구 이상의 존재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집을 구하지 못해 호텔 방을 전전하며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당시 최나연은 자신의 집을 기꺼이 내줬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집을 내어주는 건 쉽지 않잖아요. 혼자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도 나연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고맙죠." 이정은은 인터뷰 내내 최나연의 이름을 올리고, 또 올리며 ‘고마운 짝’이라고 표현할 만큼 최나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 아니면 누가 100점 받나요?"

이정은은 자신의 인생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그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자평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이 만점을 준 이유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정은은 3수 끝에 LPGA 투어에 입성했다. 2014년 말 LPGA 투어에 처음 문을 두드린 이정은은 파이널 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공동 28위에 머물러 조건부 티켓을 받는데 그쳤다. LPGA 재수에 나선 2015년에는 공동 53위로 밀려 또다시 풀시드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우승은 고사하고 변변한 성적조차 내지 못했던 상황. 하지만 이정은은 2016년에 또다시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도전해 마침내 단독 5위에 오르면서 꿈에 그리던 풀시드권을 획득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은 무던한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정은은 "후회하기 싫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나에게 100점을 안 주면 어떡하느냐"며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의 인생에 100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정은의 당당함은 어쩌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우승을 하고 싶어요. 올해 사주를 봤는데, 초반에는 운이 없고, 7월 이후부터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즌 초반에는 아예 기대를 놨어요. 하하. 우승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골프는 재미있게 할 겁니다."

미국 투어에서 우승이 없는데 어떻게 100점을 줄 수 있느냐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승을 많이 한 선수보다 꾸준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또래들이 하나, 둘 투어를 떠나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투어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은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골프 인생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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