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투어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시즌을 돌아봤다. 아시아 지역 출신 우승자가 대거 배출되면서 ‘아시안 파워’를 실감케 한 시즌이었다. 태국은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우승했고 샤네티 완나샌과 파자리 아난나루칸이 각각 1승씩 챙겼다. 한국 선수로는 고진영이 2승, 김효주와 유해란 그리고 양희영이 각각 1승씩 거두며 시즌을 마감했다.
각성한 릴리아 부
올해 가장 주목받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릴리아 부(미국)가 아닐까 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베트남 이민자 3세인 릴리아 부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18년 프로 데뷔 이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던 릴리아 부가 올해 마치 각성한 듯 시즌 초반부터 기세를 올렸다. 올해 2월, 시즌 2번째 대회인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하며 2018년 프로 전향 이후 첫 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투어 첫 우승을 신고한 릴리아 부는 두 달 뒤 셰브런 챔피언십과 8월에 열린 AIG 위민스 오픈 등 2개의 메이저 챔프에 오르며 세계 랭킹 1위 자리까지 꿰찼다. 그는 시즌 막판 아니카 드리븐 바이 게인브리지까지 우승하며 올해 4승을 챙겼고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대표 주자 셀린 부티에
릴리아 부와 함께 올해 주목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프랑스의 셀린 부티에다. 그는 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태국계 선수다. 셀린 부티에 역시 2017년 프로 데뷔 이후 이름이 자주 거론된 선수는 아니었다. 2019년 ISPS 한다 빅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2021년 숍라이트 LPGA 클래식에서 생애 두 번째 우승을 거둔 뒤 다시 2년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올해 3월 LPGA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인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과 이어 열린 프리드그룹 위민스 스코티시 오픈까지 연달아 우승하며 가장 먼저 시즌 3승째를 거뒀다. 프랑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자국에서 열린 에비앙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됐다. 이후 10월 메이뱅크 챔피언십 우승으로 릴리아 부와 함께 나란히 4승씩 챙기며 시즌을 마감했다. 투어 통산 6승째였다.
중국 펑샨샨의 뒤를 이을 인뤄닝
세계 랭킹 1위와 3위인 릴리아 부, 셀린 부티에가 아시아계로 LPGA투어 무대를 양분했다면 세계 랭킹 2위 인뤄닝(중국)의 등장도 눈에 띄었다. 만 스물한 살의 인뤄닝은 올해 디오 임플란트 LA 오픈과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89만 4677달러(한화 약 38억 원)를 벌어들여 상금 순위 4위에 올랐다. 올해 투어에서 4승씩 거둔 릴리아 부와 셀린 부티에의 활약으로 인뤄닝이 가려진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그는 현재 지구에서 골프를 가장 잘하는 여자 선수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고진영의 컴백 그리고 부상
2022년에 부진을 겪은 고진영이 3월에 열린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과 5월에 열린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을 우승하며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복귀했다. 그리고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공동 20위에 오르며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미국의 넬리 코다에게 내줄 때까지 역대 최장기간인 163주간 1위에 머물렀다. 종전 기록은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의 158주였다. 고진영은 시즌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최악의 하반기를 보냈다. 결국 올해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는 왼쪽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기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그의 세계 랭킹은 6위다.
국가대항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태국
태국 골프는 강했다. LPGA투어 국가대항전인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태국은 나흘간 한국과 미국, 호주, 일본을 상대로 무려 11승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회에서 태국은 에리야, 모리야 주타누깐 자매와 패티 타바타나킷 그리고 아타야 티띠꾼이 한 팀을 이뤄 환상의 호흡으로 상대 팀을 압도했다. 8개 국가 중 6번 시드를 받았던 태국의 반란이었다. 이로써 태국은 여자 골프의 강국임을 입증했다. 반면 고진영, 김효주, 전인지, 최혜진이 한 팀을 이뤄 출전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열아홉 살 루키 샤네티 완나샌의 깜짝 우승
태국 출신 선수들의 선전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특히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루키 샤네티 완나샌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완나샌은 우승 전까지 무려 8개 대회 연속 컷 탈락한 상황이었다. 올해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공동 51위, 3월 LPGA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에서 공동 57위, 8월 ISPS 한다 월드 인비테이셔널 공동 54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포틀랜드 우승 직후 참가한 크로거 퀸 시티 챔피언십에서도 컷 탈락했다. 결국 1번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해의 신인상 포인트 부문 8위에 머물렀다.
솔하임컵, 치열한 승부 끝 유럽 우승
미국과 유럽의 팀 대항전인 솔하임컵은 그야말로 명승부였다.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5승 2무 5패를 기록하며 양 팀은 14대 14로 동률을 이뤘다. 승부를 가리지 못할 때는 전 대회 우승팀이 우승컵을 가져가는 규정에 따라 2019년과 2021년에 이어 유럽이 홈 코스에서 다시 우승컵을 챙겼다. 미국 팀 단장인 스테이시 루이스는 “플레이오프를 치르면 더 짜릿할 것이고 명쾌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투어 첫 우승과 신인상 동시에 거머쥔 유해란
투어 하반기에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특히 국내 투어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유해란이 10월에 열린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뒀고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난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 안니카 소렌스탐으로부터 신인상을 받았다. LPGA 무대에서 한국 선수가 신인상을 받은 것은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유해란은 “첫 시즌이 무척 어려웠지만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면서 “꿈이 이뤄졌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1년 5개월 만에 우승한 김효주
10월에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어센던트 LPGA 마지막 날 2언더파 69타를 기록하며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시즌 첫 승이자 투어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첫날 선두로 나선 김효주는 최종라운드까지 선두를 지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으로 롯데 챔피언십 이후 1년 5개월 만의 우승을 자축했다. 김효주는 60타대 평균 타수(69.628타)로 베어트로피 수상을 노렸으나 시즌 막판 태국의 아타야 티띠꾼(69.533타)에게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시즌 상금 212만 3856달러를 챙기며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200만 달러를 넘기며 상금 순위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만 달러 잭폿 터뜨린 양희영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진행된 2023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700만 달러)에서 한국의 양희영이 최종 합계 27언더파 261타로 우승을 차지하며 200만 달러(한화 약 26억 원)의 우승 상금을 챙겼다. 이로써 양희영은 투어 통산 5승째이자 올 시즌 한국 선수로서 5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또 시즌 상금 300만 달러를 넘기며 릴리아 부에 이어 상금 랭킹 2위에 오르며 시즌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