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뤄닝이 말레이시아에서 우승했고 유해란은 3위로 마쳤다
한국 선수들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의 아쉬운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말 말레이시아에서 마친 메이뱅크챔피언십에서 중국의 인뤄닝이 우승하면서 시즌 3승째를 차지했다. 유해란이 막판 우승 경쟁을 벌였으나 지노 티띠꾼(태국)에 이은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선수는 모두 10명이 출전했으나 최혜진이 공동 6위로 마쳤다. 한 시즌에 15승을 거두던 한국 선수들의 우승 행진이 사라졌다.
20대 초반의 중국 선수가 올해 3승, 태국이 총 5승, 일본이 메이저 대회에서만 2승을 거두었으나 한국은 양희영과 유해란의 2승에 그쳤다. 예전에 우승을 휩쓸던 아시안스윙에서조차 한국은 아시아 경쟁국들에 뺏기는 형국이다. 특히 LPGA투어에 나가려는 한국 선수가 줄은 것이 큰 이유다. 매년 나오던 신인상은 올해는 일본이 유력하다.
BMW레이디스에서 한나 그린이 우승했다
굳이 따지면 한국에서 열리는 유일한 LPGA투어 BMW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의 우승이 3년째 없어진 것도 부진의 큰 요인이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가 우승하거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가 우승해 미국 투어 진출권을 얻었던 대회여서 더욱 그러하다.
2019년 BMW레이디스클래식이 시작한 이래 장하나, 고진영이 우승할 때는 KLPGA 선수들만도 32명이 나왔다. LPGA 선수 20여명까지 합치면 84명의 출전 선수 중에 한국인이 절반을 넘겼다. 하지만 2022년 KLPGA가 ‘비공인대회’로 규정하고 선수 출전을 막으면서 기껏 20명 남짓 출전했고 우승은 교포이거나 외국 선수가 차지했다.
2002년 나인브릿지클래식으로 시작해 하나은행KEB챔피언십까지 17년간 이어진 LPGA 대회에서 한국 선수는 LPGA에서는 박세리를 시작으로 박지은, 최나연(2승) 양희영, 전인지까지 6승을 거뒀다. KLPGA 소속으로는 2003년 안시현을 시작으로 이지영(2005), 홍진주(2006), 백규정(2014)에 2017년 고진영까지 5명이 LPGA투어 직행 티켓을 받았다.
BMW에서 성유진이 공동 4위로 마쳤다
한국 선수들이 더 큰 무대로 나가는 통로였던 대회가 KLPGA로부터 ‘비공인’으로 낙인찍힌 뒤로는 한국 선수 우승은 자취를 감췄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KLPGA 집행부는 3년 전 이 대회를 비공인으로 규정하고 소속 선수들에게 출전에 따른 제제로 10개 대회 출전 금지와 1억원 이하 벌금이라는 조치를 내렸다.
당시 최고위직 KLPGA 관계자는 ‘황금 시즌에 다수 선수들이 경기를 쉬란 말이냐’라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KLPGA 대회를 만들었고, 한 주에 LPGA와 KLPGA 두 개 투어가 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됐다. 지난해는 똑같은 주에 LPGA에 진출하려던 성유진, 홍정민이 LPGA 2차 퀄리파잉(Q)스쿨에 나가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KLPGA 집행부가 LPGA를 비공인으로 규정하고 선수 출전을 막은 속내는 어느 미디어 인터뷰에서 나왔다. “협회의 생각은 상위 선수들만을 위해 나머지 선수들에게 손 놓고 쉬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LPGA 대회에 나가는 선수는 상금도 받고 우승하면 출전권도 받지만 그 기간 다른 선수들은 쉬어야 하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역대 한국에서 열린 LPGA 대회
LPGA투어와 같은 기간 KLPGA 투어 대회를 열어 많은 선수가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게 KLPGA 집행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정 선수들을 위하는 것일까? 우선 상위권 30여 명의 선수들은 총상금 30여억원의 큰 대회에 나가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는 기회를 잃게 된다.
세계 랭킹 높은 국내 선수들은 국내 대회보다 총상금에서 3배 이상의 상금을 탈 수 있고, 우승하면 고진영처럼 LPGA 2년 출전권을 갖는 건 그야말로 자신의 투어 경험을 한 차원 높이는 기회였다. 따라서 상위권 선수들에게는 KLPGA 집행부가 더 큰 무대로 나갈 미래의 기회를 빼앗은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30위권 이내 상위권 선수를 제외한 중하위 선수들의 권익이 제한되는가의 문제다. 요즘 KLPGA는 시청률도 높고 최고의 인기라고 홍보한다. 그렇다면 같은 기간에 대회를 개최하되 선수에게 출전의 선택권을 넘기면 어떤가? LPGA 대회 출전 자격이 되어 나가는 선수와 KLPGA 대회에서의 포인트를 쌓기 위한 선수가 분산될 것이다.
2017년 고진영이 우승하면서 LPGA 티켓을 받았다
국내 여자 투어 인기가 높으니 그 기간에 대회를 열겠다는 스폰서가 설마 없을까 싶다. 총상금을 다소 줄이더라도 대회를 만들면 LPGA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중위권 선수들이 상금과 포인트를 받을 기회는 더 늘어난다. 상위권 선수들이 LPGA투어에 나갈 때 중하위권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라면 생애 첫승의 꿈을 달성할 선수도 늘어날 것이다.
국내 상위권 선수들은 어렵게 시간을 쪼개 해외 메이저 대회에 나간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기량을 테스트할 기회를 갖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간다면 국내 대회 2~3개를 빠져야 하고, 설사 좋은 성적을 거둬도 다음 시즌 출전권이 걸린 포인트를 받을 수 없는 건 한계였다. 그런데 국내에서 열리는 LPGA 대회마저도 못나가는 게 현실이다.
매년 한국 선수들에게 LPGA투어 진출권 티켓을 주던 대회가 외국 선수들의 잔치로 끝나는 건 생경하다. 세계 골프 랭킹 톱10 중에 8명이 나오는 대회가 국내에 들어오면 ‘비공인 대회’라는 낙인을 받는 건 코미디다. 중국과 일본, 태국에서는 자국 선수가 LPGA에서 우승하는 스토리가 우리에게는 사라진 상황이 슬프다.